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녹산의 난 (문단 편집) ==== 양경 탈환전(II) : 신점 전투. - [[낙양]]의 탈환. ==== 장안성 함락 후에도 당군의 전진은 멈추지 않았다. 동관에서 당군은 퇴각하는 연군의 뒤를 잡아 5천여 명을 참살했으며 화음과 홍농에서도 승리를 거두고 포로 100여 명을 관중으로 헌상하기도 했다. 장통유 등 장안을 지키던 연군이 낙양에 도착하자 안경서는 낙양을 지키던 방위병력을 총동원해 당군을 막고자 출격시켰고, 낙양 근교인 신점에서 다시 당군과 조우한다. 신점 전투는 항적사 전투와 약간 전개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낙양의 방위병력을 총동원, 15만에 달하는 전력을 구축한 연군은 산을 의지하며 진을 치고 곽자의 등이 이끌던 당군과 교전한다. 그러나 곽자의가 거짓 퇴각으로 연군을 끌어낸 후 미리 남산 북쪽으로 따로 떼어내 주둔시켜 놓았던 회흘 및 서역군으로 하여금 그 후방을 가격하게 하여 연군의 전열을 붕괴시켜 격파한다.[* 구당서에 따르면 이때 회흘군을 지휘한 것은 이사업이다.] 이에 지휘관이었던 엄장과 장통유 등은 섬성을 버리고 동쪽으로 도주했으며, 이 소식을 들은 안경서 또한 10월 16일에 낙양을 버리고 하북으로 도주하면서 '''낙양 또한 회복된다.''' 도주하면서 안경서는 가서한과 정천리 등 그때까지 포로로 잡았던 당의 장수 30여 명을 모두 죽이고 떠났다고 한다. 낙양이 함락되면서 회흘은 당숙종이 약속한 대로 낙양을 약탈하려고 했다. 통감의 서술로 볼때[* '회흘은 속으로 '''아직''' 만족하지 않으니 이숙은 그것을 걱정하였다. - 자치통감.] 낙양으로 오는 길에 함락한 도시들에서 회흘은 약탈을 수행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에 이숙은 회흘의 낙양 약탈을 막기 위해 부로들을 통해 비단 1만여 필을 거두어 회흘에게 뇌물로 바첬고, 회흘은 이를 받고서야 약탈을 멈추게 된다. 양경 탈환전을 진두지휘하면서 곽자의는 '''당대 최고의 장군이자 안녹산의 난 진압의 최고공로자 [[구국영웅]]'''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당숙종은 곽자의에게 '''"나(당숙종)의 집안과 나라는 경을 통하여 다시 만들어졌소."''' 하며 위로할 정도였다. 그러나 동시에 이로써 당대의 장수들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전공과 명예를 쌓게 되었기에 이후 당 조정내 여러 인물들의 견제를 심하게 받기 시작한다. 낙양의 탈환소식은 당숙종이 장안에 도착할때에 맞추어 전해졌다. 이에 병사와 백성들이 환호했다고 한다. 이로써 당숙종은 '''대반격의 목표였던 양경의 탈환을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